감정을 정확히 읽어주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
은아 : 왜 자꾸 이런 불편한 감정에 휘둘리게 되는걸까요? 버려지고 상처받고 이런 스토리는 이제 그만 쓰고 싶은데요.
의사 : 스토리의 생생함을 뭘로 만들까요? 감정. 감정 워치를 보고 올라오는 감정을 정확히 읽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은아 : 좀... 좀 엷어지는 느낌.
의사 : 맞아요. 부정적인 감정은 정확히 읽히는 순간 제어가 돼요. 적어도 망상에 망상을 덧붙여서 점점 더 커지게 하지는 않아요. 감정이 엷어지면 스토리의 힘도 자연스럽게 약해지고.
은아씨는 그동안 감정 보는 연습을 많이 해서 이제 감정 워치 없이도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한번 해봐요. 정확하게 감정을 읽는 연습.
모자무싸의 여러 명대사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편의 이 대사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마 내가 상담 일을 하고 있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맞아, 그래서 상담을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내담자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정신화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정신화 능력을 길러야 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정신화에는 자기 정신화와 타인 정신화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그중 자기 정신화는 자신의 생각, 감정, 의도, 욕구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실 상담에서는 생각보다 감정을 정말 많이 묻는다.
"지금 어떤 마음이 드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어떤 내담자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에서는 끊임없이 감정을 질문하고, 구체화하고, 이름 붙이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냥 짜증나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억울했어요."
"화가 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수치심이었어요."
그러다보면 이렇게 감정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읽어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순간 감정은 조금 엷어진다. 그렇게 감정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 속에 휩쓸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감정을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
"아, 나 지금 되게 억울하구나."
"화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불안했구나."
이렇게 감정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막연한 감정은 형태를 가지기 시작한다. 형태를 가진 감정은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이름 붙지 못한 감정은 종종 자기비난과 같은 끝없는 생각으로 우리의 마음을 파도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상담이 일종의 '감정 워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상담자는 계속해서 묻는다.
"지금 어떤 마음인가요?"
"그때 몸의 감각은 어땠나요?"
"그 안에 다른 감정은 없었나요?"
내담자가 혼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감정을 함께 찾아주고, 이름 붙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상담의 목표는 상담자가 평생 감정 워치가 되어주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상담실을 떠난 뒤에도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
누군가가 물어주지 않아도 자기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것.
상담은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감정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주는 사람이 생길 때 우리는 위로받는다. 그 사람은 상담자일 수도 있고, 소중한 타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가장 오래 함께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오늘도 상담실에서는 질문한다.
"지금 어떤 마음이 드나요?"
그 질문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질문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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