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상담, 우리가 가장 늦게 배우는 상담은 아닐까요
초임 시절 보호자 상담 날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위클래스 내부를 둘러보며 어수선하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상담에 활용할 자료를 계속 읽으며 발을 동동거리곤 하였습니다.
상담실 문이 열리고 앉을 자리를 안내해드리고 나면, 짧은 정적이 흐릅니다.
어떤 분이실까, 어떤 이야기를 꺼내실까, 내가 잘 들어드릴 수 있을까.
저는 이 몇 초가 가장 무거웠습니다.
아이 상담은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보호자 앞에 앉으면 저의 언행 하나하나가 다 신경 쓰이며 초긴장 상태가 되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전문가답게 보일까, 어떤 질문을 준비해야 흐름을 놓치지 않을까.
돌이켜 보면 그때 저는 보호자를 만날 준비가 아니라, 평가받지 않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호자 상담의 인식이 바뀐 계기는 한 어머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자녀 두 명의 종합심리검사 결과를 병원에서 설명 들으셨지만, 좀 더 자세한 해석을 듣고 싶다며 위클래스를 찾아오셨습니다.
종합심리검사 결과보고서에 쓰인 전문적인 용어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면서 살펴본 어머님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습니다.
해석 설명이 끝난 뒤, 어머님은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저도 ADHD예요. 우리 아이들도 둘 다 ADHD라서 약 먹기 시작했고… 저 어쩌면 좋을까요."
목소리에는 죄책감과 오래 묵은 피로가 묻어 있었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결국 자신을 탓하는 말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준비해 놓은 상담 자료를 잠시 내려놓고, 그저 들었습니다.
이어진 이야기는 아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어머님 자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침마다 두 아이를 깨우는 일이 전쟁 같다는 이야기,
알림장이나 준비물을 자주 놓쳐 담임선생님 연락을 받을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제가 부족해서, 저 때문에 아이들이 이런 걸까요"라는 말.
어머님은 그 말을 하시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 드려야 할지 몰라, 그저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말을 보태는 것보다, 함께 있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습니다.
어머님께서 눈물을 충분히 흘리실 시간을 드린 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님, 오늘 여기 오셔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실 수 있으신 것이 정말 용기 있으십니다.
아이들을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상담하러 오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한 문장에 어머님은 더 우셨습니다.
"저랑 같이 ADHD 아동을 어떻게 양육하고 교육하면 좋을지 공부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정기적인 부모상담은 처음 해 보는 거라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지만,
오늘처럼 지치고 힘드실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으실 때 저한테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저랑 함께 해봐요. 옆에서 같이 있을게요."
저의 이야기에 얼굴에서 그늘이 잠시 걷히고 어머님은 옅게 웃으셨습니다.
"이런 말 들어본 적 오랜만이네요. 감사합니다."
상담이 끝날 무렵 어머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이한테 화낼 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서 미안하고 모두 제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한테 너무 엄격했던 것 같아요. 그럴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날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보호자 상담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이기 전에, 아이 옆에 서 있는 한 사람을 살피는 자리라는 것을요.
아이 이야기를 나누러 오신 분이었지만, 어머님께도 누군가의 다정한 시선이,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그 어머님과의 만남 이후 저는 보호자 상담이 왜 꼭 필요한지 비로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보호자 상담을 하러 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오늘, 누구를 만나러 가는가.'
아이의 문제를 해결할 정보 제공자를 만나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아이 옆에서 가장 오래 견뎌 온 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인지.
같은 자리에 앉아도, 이 질문의 답에 따라 상담의 결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보호자 상담이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우리가 전문가여서 보호자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을 한 사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문이 열린다는 것을요.
평가하지 않는 시선, 판단을 잠시 미뤄두는 마음,
그리고 "혼자 애쓰셨겠어요"라는 한마디.
어쩌면 상담자의 가장 큰 전문성은 이 평범한 태도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첫 보호자 상담을 앞두고 마음이 무거운 선생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완벽한 답을 가지고 있어서 보호자가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듣고, 곁에 있겠다고 말해 드리는 것만으로도 보호자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결국 아이에게 닿습니다.
보호자 상담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늦게 익숙해지는 영역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장 큰 보람이 머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상담실 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그 떨림은, 진심의 다른 이름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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