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그 아래를 듣는 사람들
어느 학교에나 비슷한 장면이 있다. 한 학생이 친구와 또 싸웠다는 이유로 상담실에 의뢰된다. 우리는 그 학생을 만나 감정을 가라앉히고, 어떤 상황인지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함께 의논한다. 그런데 몇 주 뒤, 같은 학생이 또 다른 친구와 부딪쳤다는 이유로 다시 상담실에 온다. 이번에는 상대만 바뀌었을 뿐 상황은 거의 똑같다.
학교상담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반복이 낯설지 않다. 분명히 잘 다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학생이 같은 문제로, 혹은 모양만 조금 바뀐 문제로 되돌아온다. 우리는 종종 이것을 학생의 의지 문제나 가정환경 탓으로 돌리지만, 사실 여기에는 우리가 무엇에 초점을 두고 상담했는가의 문제가 숨어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대상관계 단기치료를 정리한 스태터(M. Stadter)는 단기상담에서도 치료자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작업하는지가 결과를 가른다고 보았다. 그는 상담의 초점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증상초점이고, 다른 하나는 역동초점이다.
증상초점은 말 그대로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중심에 두는 것이다.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이나 어려움 등을 의미하는데 많은 학교상담자는 이러한 증상초점에 초점을 맞추어 상담을 진행하게 된다. 앞선 예시에서 친구와 다투는 문제들이 증상초점에 해당된다.
역동초점은 그 증상이 촉발하는 내담자의 핵심 역동이나 원인, 핵심패턴이 무엇인가다. 앞선 예시에서처럼 학생이 계속해서 싸우는 이유가 어떤 역동에 기인하느냐에 따라 상담에서 어디에 중심을 두냐가 달라진다. 똑같이 친구들과 다툼이 많은 학생이더라도 어떤 학생은 친구들의 눈빛에서 "나를 무시한다"라는 느낌에 분노와 수치심을 느껴 반응한다면, 어떤 학생은 친구들 속에서 "나는 외롭다, 나는 배척된다"라는 느낌에 두려움을 느껴 싸움을 통해 자극을 얻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학생의 보이는 증상 이면에 어떤 역동이 자리잡느냐에 따라 학생에 대한 이해 자체가 달라진다.
스태터는 짧은 상담이라도 "역동적으로 사고하면서, 다룰 수 있는 기저의 문제를 다루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말한다. 증상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증상을 다루되 그 밑에 흐르는 역동을 함께 읽을 때, 짧은 작업도 더 깊고 더 오래가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상담에서 증상 그 아래를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
역동을 읽고 다루는 일은 흔히 장기 심리치료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충분한 회기, 안정된 치료 구조, 깊이 들어갈 시간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기 수가 적고, 의뢰가 행동 단위로 들어오고, 눈에 보이는 변화를 빨리 내놓아야 하는 학교상담은 구조적으로 증상초점에 가장 쉽게 끌려간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역동초점이 전문상담교사에게 더 중요해진다. 증상만 다룬 상담은 그 순간에는 분명히 효과가 있다. 학생은 진정되고 행동은 잦아든다. 하지만 밑에 깔린 역동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억눌린 것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양으로 다시 올라온다. 싸움이 잦아드니 등교를 거부하고, 등교 문제가 정리되니 자해가 시작되는 식이다. 우리는 매번 새로운 불을 끄지만, 정작 불씨는 건드리지 못한 채 같은 학생을 계속 만나게 된다.
이 반복은 학생에게도, 전문상담교사에게도 소모적이다. 학생은 매번 "문제를 일으킨 아이"로 호명되며 자신이 한 인간으로 이해받았다는 감각을 얻지 못한다. 전문상담교사는 같은 위기를 반복해서 처리하는 소방수 역할에 갇히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잃기 쉽다. 증상만 쫓는 상담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사례로 보는 차이
가상의 사례를 들어 보자. 중학교 2학년 지수(가명)는 친구와의 갈등으로 학기마다 몇 차례씩 상담실에 의뢰된다. 사소한 말다툼이 금세 커지고, 먼저 관계를 끊어 버리는 일이 잦다. 의뢰 사유는 늘 "또래 관계 갈등, 공격적 언행"이다.
증상에 초점을 두면 상담은 분노 조절, 사회기술 훈련, 행동 약속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이런 작업은 분명 도움이 된다. 지수는 한동안 차분해지고 갈등도 줄어든다. 그러나 다음 학기, 상대만 바뀐 채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
역동에 초점을 두면 질문이 달라진다. 지수는 왜 가까워질 만하면 먼저 관계를 깨뜨릴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수에게는 "결국 사람들은 나를 떠난다"는 깊은 예상이 자리 잡고 있다. 버림받는 것을 무력하게 기다리는 일이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이 먼저 관계를 끊어 버린다. 버림받는 수동적 위치를 버리는 능동적 위치로 바꿔서 견딜 수 없는 상황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지수의 공격성은 무작위적 충동이 아니라, 내면에 새겨진 관계패턴을 되풀이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 역동이 보이기 시작하면 상담은 달라진다. "친구를 때리지 말자"는 약속을 넘어, 지수가 관계 속에서 버림받기를 예상하는 바로 그 순간을 함께 알아차리도록 돕는다. 그리고 전문상담교사와의 관계 자체가, 갈등이 생겨도 먼저 끊어 버리지 않는 경험, 떠나지 않는 관계의 경험이 된다. 회기가 많지 않아도 이런 작업은 행동 약속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지점을 건드린다.
증상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역동초점은 증상을 가볍게 여기라는 뜻이 아니다. 학교라는 현장에서 증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학생의 고통은 실제이고,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도 있으며, 학교라는 체계는 눈에 보이는 변화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당장의 위기를 다뤄야 하고, 그것이 우리 일의 중요한 부분이다.
스태터가 말한 실용적 태도가 우리에게 답을 준다. 역동적으로 사고하고 바라보되, 다룰 수 있는 만큼의 기저 문제를 다루고,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역동초점은 증상 작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어떻게 다룰지, 그리고 증상을 가라앉히는 것 너머에서 무엇을 바라볼지를 알려 준다. 우리가 가야할 지점, 방향과 같은 것이다. 같은 행동 약속을 하더라도, 그 학생의 역동을 읽고 있는 전문상담교사가 하는 약속과 그렇지 않은 약속은 질이 다르다.
증상 너머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
결국 역동을 이해하는 일은, 시간이 넉넉한 상담실에서나 가능한 특별한 기법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과 조건이 빠듯한 학교상담을 의미 있게 만드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행동을 관리하는 일과 한 사람을 만나는 일의 차이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모든 학생과 깊고 긴 작업을 할 수 없다. 현실의 조건은 늘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을 때조차, 그 학생의 증상 뒤에 흐르는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다는 사실은 그 적은 작업의 의미를 바꾼다. 학생에게는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 이해받았다는 경험을, 우리에게는 같은 위기를 반복하는 소방수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에 닿았다는 감각을 남긴다. 증상에 머무를 것인가, 그 뒤의 역동까지 읽을 것인가. 짧은 만남일수록 이 선택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
보이는 것에만 머물지 말자. 학교상담자는 보이는 것 너머와 그 아래에 있는 그 마음을 읽고 함께 해야 한다.
참고문헌
Stadter, M. (2006). 대상관계 단기치료 (이재훈, 김도애 공역).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원전은 1996년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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